2018년 12월 20일
오늘은 새삼스럽게 나에게 주어진 세 장의 합격통지서를 인쇄해보았다. 지역에서 꽤 알아주는 지방거점대학교에서 두 장을 받게 되었고 분교지만 꽤 알아주는 수도권 대학에서 한 장을 받게 되었다. 뿌듯함보다는 억울함과 탐탁치 못한 감정이 밀려왔다. 실은 오늘은 그 수도권 대학의 1차 추가합격자가 발표되는 날이었다. 예비 3번이었던 나는 예상했던 대로 최종합격이 확정되었다. 한때는 그토록 바라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아 갈수도, 손으로 잡을 수도 없을 만큼 멀어져 버린 대학이 되어버린 ‘인서울’ 몇몇 대학에 비하면 나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다. 얼마 전 내 입시의 희망이었던 그 대학에서 탈락이 확정되었을 때 나는 이 대학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특성화된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본교에 미치지 못하는 분교라는 딱지가 나에게는 자존심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원해왔던 서울과 멀어진 지금, 작은 희망이었던 이곳마저도 나에게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무엇을 위해 공부했는가. 내 노력의 보상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중이다. 사실은 아직은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다. 친구와의 수다에 가슴이 설레 공부를 뒤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음료로 피곤한 몸을 일으켜 잠을 삼키고 공부하던 날들도 있었다. 첫사랑에 몸과 미래를 맡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학생활동에 임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던 날들도 있었다. 떨어질지도 모르는 시험점수 때문에 밤낮을 불안해한 날들은 내 수험생활의 거의 모든 날들이었다. 남들에게 가시 박힌 말들을 들어가며 미친 듯이 학업에 매진했던 날들도 있었다.
내가 기대하던 것들은 무엇이었는가? 캠퍼스의 낭만,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하는 팍팍하지만 소중한 삶. 일부로 꾸준히 연락했던 서울 지인들과의 반가운 재회. 이젠 사라져버린 꿈으로 남는다. 부모님이 반대해서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접수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예상한 적 없었던 결말이라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내 삶은 내 예상대로 흘러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 했을 때는 적어도 그 노력을 크게 배반하지 않을 정도의 결과를 얻었다. 반면 노력하지 않았을 때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간절하게 바라고, 최선을 다했던 것은 꼭 나에게 그 보상을 해주었다. 간절히 바라고 최선을 다하면 그 답은 언제나 yes 였기에 나는 사실 입시에 대해 큰 걱정이 없었다. 내가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기도하고 바래왔던 것은 서울 입성이었다. 물론 좋은 대학이면 더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인서울을 하고 싶었다. 나도 이 좁은 시골, 허무맹랑한 시골, 텁텁하고 촌스러운 광주를 벗어나 더 큰 곳으로 향하고 싶었다. 내 바람은 강렬했고 내 노력은 후회 없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늘은 매정했다. 간절함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면접을 크게 망치고 울면서 면접장을 나왔을 때를 기억하면 하늘이 노랗다. 눈물로 번진 얼굴이 차갑다. 부드럽던 살결이 꼿꼿이 서고 모진 말이 튀어나왔다. 결과는 그대로였다.
결국 나는 지방거점국립대에 장학생으로 가게 되었다. 어제는 처음으로 혼자 그 대학 번화가에서 걸어보았다. 단발에 코트를 입고 한손으로는 전공서적을, 다른 한손에는 이어폰으로 연결된 휴대폰을 들고 대화하는 여대생이 멋있어보였다. 무심하게 묶은 중단발에 유행과 거리가 먼 뿔테안경, 회색과 갈색,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 니트를 입고 혼밥을 즐기는 화장기 없는 여대생도 멋있어 보였다. 여기도 분명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는 위인들이 존재하리라.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내 자신이 한스러워진다. 여기도 누군가의 사라져버린 꿈이겠지? 하지만 그 말은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후회 없는 노력과 간절함을 배반당한 사람이기에.
아빠는 불만족스러운 사업결과를 안고 집에 들어와 딸의 합격통지서를 받고 한참을 바라보더니 휴대폰 카메라로 정성스레 찍는다. 엄마는 가족 sns에 올리자며 너스레를 떤다. 갓 고등학생이 된 동생에게 누나를 본받으라며 내 어깨에 힘을 실어준다.
요즘 나는 자랑스러운 딸이다. 6장중에 3장을 얻어내고, 그중에서도 성적으로 전액장학금을 받고 들어가게 되었으니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딸이 되었다.
처음에는 마냥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이 좋았다. 나도 내 자신이 좋고 사랑스러웠다. 뿌듯했고 ‘국립대 신방과 장학생’이라는 타이틀이 내 노력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위치가 뚜렷해질수록, 선명해질수록, 확실해질수록 나는 점점 더 세상이 원망스럽다. 짧게는 2년 길게는 수험생활 12년 동안 꿈꿔왔던 곳이 아니기에 행복하지 않다.
누가 보아도 열심히 했던 친구들이 재수, 반수를 결심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에 반해 3장의 영예를 안고 장학생이라는 이름의 새내기가 된 나는 훨씬 나은 상황인가보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스럽고, 가슴에 무언가가 남아있는 것 같고, 합격통지서를 봐도 기분이 좋지가 않다. 나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의 친구들이 대부분이기에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이야기다.
나도 힘든데, 주변에서는 자꾸 넌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자꾸 주변 친구들을 보라고 한다. 당신들이 내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내가 얼마나 떳떳하게 공부했는지를 알고 있을까? 내 노력과 꿈이 얼마나 강인하고 확연했는지를 보았는가? 그들의 눈물이 더 오래가고, 더 굵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충분히 힘들고 지치는 중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이지만 나도 이 상황이 너무 싫다.
나 혼자만 가만히 있으면 모두가 행복 할 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내 노력과 열망을 아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 주변사람들은 단순히 이번 결과에 대해 내가 충분히 만족해야한다고 말한다. 수능에서 나를 배신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타이틀같은 말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은 나에게 오랜 여운을 주는 짧고 굵은 말이다. 주변사람들의 언어와 몸짓, 감정표현에 쉽게 마음이 흔들린다. 나는 굵고 단단한 몸통과 뿌리를 가졌지만 얇고 연약한 가지가 무성한 나무이기에 해와 바람과 비의 영향을 달게 받는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합격통지서를 받았지만 녹녹한 마음에 손톱처럼 자라난 잡생각들을 담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