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기획하며
막 고등학교 생활 3년차에 접어들었다. 그 누구보다 공부에 전념해야 할 시기인 고삼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 않은 일을 스스로 찾아 해내고 말았다.
모두 공부에 전념하라는 말만 되풀이할 때, 나는 아침밥 먹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동기는 꽤 평범했다. 사실 고등학교 일학년때부터 나는 아침밥을 먹으며, 항상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 버려지는 음식들을 보고 정말 아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장면을 본 순간부터 아침을 먹을때면 거의 항상 '저 음식들을 활용할 방안은 없을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정말 없을까' 를 고민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생활이 익숙해지며, 늦은 야자를 끝내고 또 추가적인 공부를 하며 2시, 3시에 잠들며, 아침을 먹기보다는 아침 잠을 선택했고 고 1 시절 꽤 깊은 고민이었던 아침밥 문제는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고삼이 되어, 사회학자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 를 보게되었다. 상투적인 말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책을 읽고 한동안 정말 미묘한 감정에 시달렸다. 그러다 어느날은 모처럼 기숙사 아침을 먹게 되었는데, 여느때처럼 버려지는 음식물을 보고 정말 평범한 일상적인 일이 너무 큰 충격처럼 다가왔다. 사당동 식구들의 고달픈 삶과 곡성고에 다니고있는 우리의 오만과도 같은 아침이 비교되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우선 매일 나라도 아침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내가 사회에 기여하는 일은 다른일이 아니라 아침먹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이런생각이 들었다. 우리학교 아침출석률문제는 몇십년동안 지속되고있는 전통인데, 그럼 그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양의 비용과 음식물이 낭비되었을까. 그리고 내가 졸업한 뒤에도 이 지독한 낭비는 계속될것이 너무나도 확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나는 다짐했다. 이 지독한 악습을 끊어내고야 말했다고. 끊어내지 않아도 좋다. 내가 한두명이라도 아침을 먹으러오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그리고 '아침밥먹기 운동' 을 기획했다.
우선 학생회 창의재량부 부장이라는 신분을 이용하기로 하고, 선생님과 학생회 임원들에게 도움을 얻기 시작했다. 녹색환경부 부장 친구에게 협조해줄것을 부탁했고 바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약 한달간 자료를 모았다. 급식실 영양사 선생님의 도움이 컸다. 학생회 선생님, 기숙사 선생님께 도움을 구해 전교 기숙사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지를 직접 제작해 돌릴 수 있었다.
또 나는 매일매일 아침을 먹으러 나가면서 급식들이 버려지는 그 순간, 7시 30분 버려지기 직전 음식물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놀랍게도 7시에 만들어진 그대로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침밥 출석율 통계자료와 급식비 현황을 영상사선생님을 통해 구해서 그래프를 만들고, 설문지 통계를 내서 또 자료분석을 시작했다.
또 그자료들을 모아서 하나의 전지에 공지문을 작성했다. 이제 이것을 학교에 붙일 일만 남았다.
이 일을 진행하면서 내가 고삼인데, 공부는 안하고 이런거나 하고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들이 시도 때도 없이 계속해서 들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진행한것을 절때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일이라도 하지 않았더라면, 두고 두고 그 버려질 음식들이 기억에 남았을 거다. 또 뿌듯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내가 우리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하다.
가장 기분좋았던 것은 이 일을 아무도 내게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은 모두 내 머릿속에서 나와서 계획하고, 추진하고, 공지하기까지 내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점이 정말 뿌듯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찾아 해내는 것, 그것은 정말로 의미있는 일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나는 확실히 사회학도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 분명하다. 평생토록 옳은 사회, 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손톱만큼의 기여라도 매일 매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