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하여/bookstory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고3starr 2018. 8. 24. 13:42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저자가 이화여대 사회학과라는 것을 알고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상당부분 성장한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권리를 되찾자는 취지의 다양한 운동들이 사회 곳곳에 확산되고 있다. 그중 논란이 된 책이 있다. 바로 82년생 김지영. 이 책은 현재 30 중후반 나이대의 평범한 여자 김지영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특별하지도, 다른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닌 보편성특수성이 된 책. 생활 속에서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김지영의 인생이 우리 엄마의 인생이 되고, 우리 언니의 인생이 되고, 어쩌면 나의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우리의 삶 속에서 김지영은 여전히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는 특별히 갈등이 극에 치닫는 상황이라던가, 엄청난 감정변화를 요하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만히 여자의 인생을 서술하고 있다. 세 번째 여자아이를 뱃속에서 지우는 어머니의 모습, 남자형제와 친척들을 위해 꿈을 가질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그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어머니와 이모.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 믿었던 김지영과 그녀의 언니인 김은영씨의 인생도 여전히 고달팠다. 항상 남동생에게 양보하고 배려했던 순간들은 김지영을 더욱 옥죄였다. 무엇보다 무서웠던 것은 이러한 일들이 당연했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목소리 낸 적 하나없다.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기대를 충족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동안 자꾸 엄마생각이 났다. 김지영의 완만한 슬픔에서 느껴진 굵은 곡선은 내 눈물자락이 되었다. 눈물이 똑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눈가가 축축해졌다. 김지영이 보편적인 여성이라는 사실이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김지영의 다음 세대인 나는 여성의 권리가 사회에서 충분히 상승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여성운동을 대놓고 하는 사람들이 유난스레 느껴질 때도 있었다. 반면 조금 너무하다시피 여자 존재 자체를 욕하는 사람들에게 환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양성평등 글짓기를 했고 그때마다 한 번도 수상하지 않은적이 없는 아이였지만, 사실 나는 일상에서 크게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사회학과에 진학한다고 마음먹은 뒤로도, 언니가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한 뒤로도 관심이 없었다. 대학입시의 시사면접 준비를 위해 현재의 떠오르는 사회현상을 공부하기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인 언니가 열정적으로 투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 궁금했기에 페미니즘에 대해 알기로 했다. 그렇게 이 책을 읽게되었다.

 

우선 스스로 사회가 정한 여성의 기대라는 가치에 나조차도 푹 빠져있었고, 충분히 적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를 충격에 빠지게 한 것은 김지영이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부분이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주변사람들의 강요같은 권유, 도를 넘은 우려로 아이를 낳아버렸다. 그런데 우리나라 상황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 듯 했다. 아니 쉬운일 이라고 하기보다는 불가능했다. 육아휴직은 있으나마나인 제도로 보였다. 여자들은 아이를 위해 꿈을 포기해야 했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육아에 투자해야 했다.

 

엄마라는 이름을 갖는 것이 위대하다고 느끼곤 했다. 하지만 지금 드는 기분은 그냥, 환멸감. 당혹스러움 그자체이다. 여자들은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순간 를 잃었다. ‘김지영을 잃고 지원 엄마가 되었다.

 

지원엄마라는 이름을 갖고 싶었을까? 설사 자신의 의지라고 하더라도, 지원엄마라는 이름을 갖게됨으로써 김지영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을까? 현재 우리사회에서 엄마들은 그렇게 하나 둘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있다. 분명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나는 늘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냥 나라는 존재의 무언가를 물려준다는 일이 너무 설렜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를 잃는 사회에서 나는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갑자기 저출산의 원인으로 쉽게 거론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라는 어구가 잔인하게 느껴진다. 여성의 사회진출로 저출산이 진행된 것이 아니다. 여성의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사회가 잘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이 사회진출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 여성을 집안에 가둬야하는가? 사회진출은 원래 남성의 것인가?

 

사회는 변화해야한다. 여성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작은 움직임이 큰 물결을 만들고, 큰 물결이 파도를 만들 것이며, 파도가 모래사장을 덮칠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래사장을 덮쳐서는 안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를 되찾아서는 안된다. 선명한 자국을 남겨야한다. 그래야 사회는 변화한다.

 

우선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사회의 표면이 아닌 그 깊은 속내를 알았을 때 사람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어느 사회학과 교수의 말은 자명한 진리로 보인다. 우리 모두는 알아야한다. 사회의 숨겨진 비합리성을 뜯어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