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입시를 앞둔 고삼으로서 지역여건이 어떠하든 간에 ‘명문대’ 라는 타이틀은 크고 높고 값진 꿈으로 여겨진다. ‘명문대’ 라는 목표를 갖고 짧게는 3년, 길게는 12년동안 학교에서 보편적인 교육을 받으며 전형적인 ‘말 잘듣는 학생’ 또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 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입시를 준비하며 같은 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주로 전문대나 지방 대학을 지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서울에 있는 사립 대학교 지원을 놓고 경제적인 문제로 부모님과 심한 다툼을 경험하면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한계를 경험하였다. 내 꿈을 위해서라는 말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기에는 현실의 무게가 너무나도 컸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희망의 끊을 놓지 않았던 것은 ‘명문대’ 라는 타이틀 이었다. 모두가 흔히 계급상승의 수단으로 여기는 학벌, 그것을 위해서라면 부모님도 무리해서라도 나를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에 보내실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결국 지방의 국립대와 흔히 말해 ‘우주상향’인 서울권 대학들을 기회균등전형으로 지원하면서 간절한 입시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명문대’ 진학을 위해 원하는 학과 사이트를 둘러보던 중 발견한 그 학과 학생의 졸업논문, 그중에서도 저소득층 명문대생의 대학생활을 다룬다는 주제는 나에게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25페이지가량의 소논문을 읽으면서 감정적으로 마음이 격해지고 울분이 차오르기도 하였다. 합격이 되든 안 되든, 저소득층은 아니더라도 중산층 또한 아닌, 경제적 한계를 느끼고있는 가정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미래가 나의 미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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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시간과 금전을 교환해야만 했다. '시간이 되면 돈이 없고, 돈을 만들려면 시간이 없으니까 그래서 되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 '어떤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떤 것도 놓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계속 반복이 되고. ' ... '생활비도 벌면서 내 욕심도 채워야 하니까. 내 욕심을 채우는 게 때로는 죄가 될 때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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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은 욕망하는 것들을 이룰 수 없게 되자 욕구를 줄여나갔다. 욕망을 가지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말하며 패션이나 뷰티에 대한 욕망부터 더 나은 삶에 대한 전망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욕망의 좌절을 불가능이 아닌 선택의 문제로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좌절에 대한 합리화임을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상, 저소득층 명문대생의 대학생활에 관한 연구)
대한민국에서 신자유주의적인 경향이 대두되고,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대학생’이라면 취업 경쟁 속에서 스펙쌓기 등이 당연시되었다. 하지만 계급상승의 통로라고 일컫는 명문대에서조차 저소득층으로서의 학교생활은 벅찼고,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는커녕 하루 이틀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과 돈의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결혼과 취업에 관한 생각도 일정 수준에 머물렀고, 계급상승은 막연한 꿈이거나 꿈조차도 꾸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흔히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주려는 대학의 기회균등전형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논문에서 기회의 평등이 과정과 결과의 평등을 보장해주지 않았다는 말이 와 닿았다.
한국사회에서 계급상승의 주요한 수단으로 일컫는 ‘학벌’ 조차 경제적 빈곤을 벗어나기에는 큰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저소득층을 포함해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부류의 약자가 존재한다. 새터민, 도시빈민, 저소득층, 노인, 여성 등 수많은 차별이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회의 평등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삶에서 한번쯤은 차별을 경험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빈곤하다는 이유로, 출신, 결혼여부, 등등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일정한 역할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평등과 차별을 경험할 수 있는 조건은 일상생활의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 모두가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며, 따라서 사회전체를 위해 불평등은 해결되어야한다.
이를 위해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사회적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국내적으로도 경쟁이 과열되며 일상생활에서 개인주의적인 풍토가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에 여유가 없고, 마음이 피폐해지니 주변 사람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안정을 얻고 불안을 얻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사회적인 계급을 만들었고, 따라서 불평등과 차별이 확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선 사회적으로 안정된 일자리, 안정된 복지 혜택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여유를 불어주어야 할 것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이 모일만한 ‘이슈’를 다루는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의 공간으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것은 내가 사회부기자를 희망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되어있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는 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 소통의 공간은 언론이 주요한 무대가 될 것이며 언론을 통해 우리사회에 해결되어야 할 불평등이 존재하고, 그것이 나의 일상생활과도 크게 동떨어진 내용이 아니며 나를 통해 해결 될 수 있는 문제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논문출처 중앙대 사회학과 http://sociology.cau.ac.kr/06_dawn/dawn_01a.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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