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하여/the conscious "I"

결코 짧지 않았던, 2년의 교육봉사

고3starr 2018. 10. 27. 11:58


다음주면 종강식이다. 내 친구처럼, 친동생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아이들과 어쩌면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이다. 2년간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구보다 의젓하고 밝게 웃는 미소가 예쁜 시온이, 베시시 웃는 미소에 모든 것을 허락하게 만드는 수학을 좋아하는 온유, 말썽쟁이지만 가장 사랑받고 싶어하는 예담이. 이 삼남매를 만나게 된 것은 나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2년 전 처음 온유를 만났을 때는 너무나도 크고 초롱초롱한 눈과 웃을때마다 생기는 보조개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한 내 첫번째 멘티가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 중 가장 사고뭉치에 말썽쟁이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채, 그저 부푼 마음에 마냥 온유가 좋았다. 그 옆에 앉은 온유의 누나라는 시온이도 너무나도 좋았다. 방실방실한 얼굴에 보라색 안경을 쓰고 있는 3학년의 시온이와 시온이의 연년생 동생 2학년 온유는 나에게 특별한 선물같은 존재였다.


물론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온유는 내가 센터를 방문할 때마다 내 말을 따라주지 않았다. 공부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만, 자신이 하고싶은 만큼만 풀기 일쑤였다. 그것보다 가장 서운했던 것은 온유는 나와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는 아이들과 많은 말을 나누고, 그 아이들의 일상을 엿보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나의 멘티인 온유가 나와 대화하려고 하지 않자 항상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센터를 나왔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온유의 누나인 시온이가 항상 밝고 붙임성이 좋으며,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도 매우 호의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시온이는 처음부터 정이 많은 아이로 보였다. 아직 낯선 타인으로 보일 법한 나와 다해에게 엄마 휴대폰을 빌려 문자를 하기도 하고, 문자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려는 노력도 보였다. 

이 시점에서 내가 후회되는 한가지는, 당시 무척 나를 좋아했던 시온이에 비해 나는 시온이에게 많은 관심을 투자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시험과 시험의 연속인 일상을 살고있던 나로써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봉사활동에 정말 그냥 '봉사활동' 그 이상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 처음 나의 의도는 어차피 채워야 할 봉사활동을 관공소 청소같은 시시한 것 보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교육봉사를 함으로써 좀 더 재미있게 이뤄나가고 싶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1년은 아이들을 보러 일부로 봉사활동을 나가지도 않았고, 시험이 있을 때는 단지 시험에만 몰두하기 위해 더욱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금 드는 생각은 '그때 아이들과 더 친해지고 내가 더 관심을 줄걸' 이지만, 흐르는 세월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다음년도에 고민없이 나는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큰 계기가 있었다.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아이들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너무나도 걱정되었던 탓에 아이들과 만나려고 집도 찾아가보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했지만, 시간탓인지, 내 노력이 부족했는지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힘들고 괴로운 아이들에게 기댈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래서 '당연히' 봉사활동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오히려 아이들보다 내가 더 자주 나왔다. 아이들이 나오지 않을 때는 아기같은 외모를 갖고 있는 3학년 민석이를 대신 도와주면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에, 나올 때마다 기록했던 활동지를 보니 내가 활동에 참여했던 열댓번 중에서 온유네 삼 남매를 만난 적은 5번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 원래 멘티였던 아이들보다, 대신 도와주었던 민석이 영석이 형제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9월 이후 거즘 한달만에 시온이네 삼 남매를 만났다. 바로 오늘이다.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시온이를 보자마자 끌어안았다. 하지만 시온이는 아 잠깐만! 하고 바로 선생님께 가버렸다. 반가운 마음에 온유에게 달려갔지만 나를 보지 않았다. 휴대폰만 바라보고 공부를 시작 한 뒤에도 내가 휴대폰을 주지 않는다면서 크게 투덜댔다. 막내 예담이는 공부하고 있는 다른 멘티에게 다가가 장난쳤다. 시온이도 크게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2년동안 이 아이들을 만났는데, 2년 전 첫날과 같이 나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타자' 일 뿐이었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멘토언니가 나오지 않는다고 울음짓는 아이들, 멘티와 즐겁게 놀이하고 대화하는 내 친구들이 부러웠다. 오늘은 진지하게 시온이에게 말했다. 몇년동안 준비한 큰 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널 보려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볼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오늘이 지나면 종강식이 마지막이라는 것, 몇년동안 너와 만났지만 말썽쟁이인 동생들때문에 힘들법도 한데 너 모습이 대단하다는 것,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에도 힘든일이 생기면 꼭 연락 하라는 말을 전했다. 그런데 시온이의 표정은 '지루함'이 묻어있었다. 언니랑 헤어지니 아쉽지 않냐는 물음에 끄덕였지만 그렇게 서운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 없냐는 물음에 '대학교가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취미생활 열심히해' 라는 인사는 형식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삼 남매는 종료시간 30분 전에 학원을 가기 위해 일찍 떠났다. 미련없이.

그 순간 너무 벅차올랐다. 내가 그렇게 걱정하고 정을 주었던 아이들에게 나는 거기까지였구나.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이 없어보이는 아이들의 태도가 나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눈물을 숨길 수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원래 저아이들이 그렇다면서, 너가 너무 정주지 말라고 하며 나를 위로하셨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말하시는 선생님의 말씀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미웠지만 이내 그 마음은 아이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으로 변했다. 몇년을 보아도 사람에게 쉽게 정을 주지 못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분명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이었던 것 같다. 1년 전 그 사고가 있기 전에 누구보다 밝았던 시온이가 점점 더 무표정인 얼굴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누구에게도 말 하지 못하는 그런 깊은 상처를 마음 속에 그냥 안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아이들이 이해가 되었다.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건이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은 엄청나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의 부재라는 사건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돕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수도 없이 많았지만 아이들이 마음속에 받아 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한번 겪어본 상처가 마음 깊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순전히 나의 잘못만으로 일어난 사건만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세상은 올 수 없는 것일까?

엄마는 나에게 아이들의 인생이란다, 라고 말해주셨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다양성'이라는 말로 이 아이들의 사회화와 이 아이들이 받은 영향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가?

나는 이것 또한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는 끝까지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야한다. 아이들이 성숙하게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사회는 끊임없이 아이들 곁에서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나를 잊을 수도 있겠지만, 나도 아이들을 점점 잊어가겠지만,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무잘못 없이, 순전히 그 운명이라는 단어 하나로' 약자가 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싶다. 봐주지 않더라도 노력하고 시도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성공했다. 상처를 깨달음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일은 실천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