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하여/daily

2018년 12월 22일

고3starr 2018. 12. 22. 05:05

이 세상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무엇일까? 적어도 얼마 전까지, 어쩌면 지금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이었다. 아니 내 노력의 결실이었다. 노력한 만큼, 간절한 만큼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머릿속에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에게 탐탁치 못한 결과를 안게 된 이후로, 나도 참 힘들고 괴로웠다. 주변의 칭찬과 위로가 잘 와 닿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효도했다면서 축하한다는 말은 뭔가 부족했다. 그 대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다며 위로해주는 친구들의 말도 뭔가가 부족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잘된 친구, 잘 안된 친구와 내 자신을 맞대어 보며 때로는 하늘을 원망하고, 때로는 자만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초라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흔한 말처럼, 절대 안 괜찮아질 것 같았던 나도 점점 무뎌진다. 어쩌면 나는 점점 성장하는 중이다.

 

얼마 전에 사고가 있었다. 전 국민이 주목할 만큼 큰 사고. 올해 수능을 본, 그러니까 나와 동갑인 학생들이 수능 이후에 학교에 체험학습신청서를 내고 펜션에서 우정여행을 즐기던 중 가스 누출로 숨진 것이다. 서울에 위치한, 얼마 전까지 자사고였던 꽤 알아주는 학교 재학생들이었다. 그 소식을 막 접했을 때는 별로 와 닿지 않았다. 사건 사고는 매일 일어나는 법이라고 생각했고 그것보다는 내 상황, 내 기분, 내 감정이 더 중요했다. 듣고 흘려버렸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나와 관련 없는 일이 아니었다. 그 애들은 고3이었다. 수험생이었다. 나와 한 날 한시에 같은 시험을 치른 아이들. 같은 날을 위해 그동안 노력해온 아이들.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수험생이었다. 이미 대학에서 합격 통지를 받은 후 떠난 여행이라고 했다. 그 아이들에게 대학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아니, 그 아이들에게 미래란 어떤 것이었을까?

가슴 뛰는 것. 마음 설레는 것. 들으면 두근대는 것. 나에게 대학과 미래는 그런 것이다. 그 아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애들도 노력의 보상을 생각할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해온 건 뭐냐고, 지금 이게 뭐냐고 묻고 싶을 것 같다. 이제 다 끝났는데, 정말 다 왔는데 이러면 지금까지 해온 게 뭐가 되냐고 소리 지르고 싶을 것 같다. 배우고 들어온 것과는 다른 세상과 현실, 불공평한 삶이 괴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왜 노력했지? 나는 왜 밤을 새서 풀기 싫은 수학문제를 풀었을까.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서였다. 적어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력은 결과가 따른다는 말만 해주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지? 이름표를 얻고 싶어서. 명문대생이라는 이름표가 갖고 싶어서였다. 그게 왜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명문대생이라고 하면 모두가 좋아하고 우러러보니까. 남들이 원하고 나에게 권유하니까. 자기가 못한 걸 너라도 해달라고 부탁하니까. 그래서 그게 좋은 줄로만 알고 밤을 새서 공부하고 늘 부족한 수면시간이 자랑스러웠다. 스스로에게 뿌듯할 만큼 공부를 한 날 밤에는 대학생활을 떠올렸다. 뿌듯함과 만족스러움이 잠깐의 위로와 내일을 살만한 힘이 되었다.

 

그 대학에 떨어진 후에 참 많이 아팠다. 무엇보다 내가 갈구했던 건 보상이었다. 울고 참고, 배고프고 피곤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 하고 싶은 것 안하고, 보고 싶은 것 안보고,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면서 공부하고 노력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 이제는 그게 꼭 필요하나 싶다. 아니,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다. 우리학교 전교 1등보다 적은 양의 노력이었을 지라도, 오직 공부에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노력이었을지라도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떳떳하다. 스트레스 받아가며 공부하고 공부하기 싫은 날에는 학생부를 채워갔던, 중간고사가 끝난 다음날에는 모의고사 기출을 풀었던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사실은 불합격 통지를 받은 후에, 스스로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영원히 봉인해놓기로 했었다. 수고 했어 고생 많았어 라는 그 흔한 말이 나에게는 어려웠다.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해버리면 정말 별 볼일 없는 결과에 대해 내가 한 노력이 사실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아니 내가 한 노력에 대한 결과가 실패였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랬다. 그래서 그냥 안하기로 했었다.

 

그런 내 자신에게 사과하고 싶다. 미안하다고, 실은 고생 많았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무리 세상이 내가 한 노력보다는 결과만으로 나를 판단한다고 할지라도, 나 스스로만큼은 그 과정과 노력과 땀과 눈물로 나를 판단하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목표를 위해 고생 많았던, 수고했던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 과정 속에서도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낸 내 자신에게 자랑스럽다.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전부였던, 삶의 전체였던 미래가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한 사건. 어쩌면 매우 작은 확률로 살아 숨 쉬는 우리는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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